큰스님 법문

서로 사랑하고 돕는 가정 - 철우스님

마음정원(寂光) 2005. 11. 21. 17:43



 

서로 사랑하고 돕는 가정


우리가 오순도순 밝고 정답게 살았던 가족중심의 가풍과 가정이 살아나려면

부자간이나, 형제간이나, 부부간이나, 친족 간에, 서로 공경하고 서로 존중하며

따뜻한 사랑으로 질시하거나 증오하지 말아야 한다.
얼굴빛은 항상 화평하게 하고 서로 멀리 있어도 걱정해 주어야 한다.

가장은 다음과 같이 인내와 끈기로 노력해야 한다.
집안사람의 허물이 있으면 몹시 성내지 말며 가볍게 여기지도 말고

그 일을 말하기 어려우면 다른 일을 비유하여 은근히 깨우쳐야 한다.
오늘 깨우치지 못하면 내일을 기다려 다시 깨우쳐 주어야 한다.

봄바람이 얼어붙은 것을 풀 듯해야 하고, 불의 기운이 얼음을 녹이듯 해야 한다.
이래야 바른 가정의 규범이 선다. 우리가 철없는 아이나 비뚤어진 사람들을 보면

‘가정교육이 없어서’라고 말을 한다.

‘가정 교육’은 ‘가정 교훈’이라는 말이기도 한데 줄여서 말하면 정훈이란 말이다.
정훈이란 논어 계씨편에 있는 공자와 그의 아들 백어와의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에서

생긴 말로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진항이란 공자의 제자가 공자의 아들 백어에게 물었다.
“당신은 아버님으로부터 뭔가 특별한 가르침을 받은 일이 있습니까?”
“그런 건 없습니다. 언젠가 뜰에 혼자서 계시기에 빠른 걸음으로 뜰을 지나고 있는데

시를 배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아직 배우지 못했다고 했더니 시를 배우지 않으면 남과 말을 할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돌아와 시를 공부했었지요.

또 언젠가 혼자 계실 때 빠른 걸음으로 뜰을 지나가고 있는데

이번에는 예를 배웠냐고 물으시더군요. 그래서 배우지 못했다고 했더니

예를 배우지 못하면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돌아와 예를 배웠었지요.

이 두 가지 가르침을 들은 것 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자 진항이 물러 나와 사람들을 보고 기뻐하며 말했다.

“나는 한 가지 물어서 세 가지를 얻었다.

시에 대해 듣고, 예에 대하여 듣고, 그리고 군자가 그 아들을 특별히 편애하지

않는 것을 알았다.”

옛날에는 아버지가 직접 자식을 가르치는 것을 피했다.

이른바 ‘역자이교지(易子而敎之)’라는 것이다.
백어도 다른 곳에서 공부하고 있었음을 이로써 알 수 있다.
그러나 뜰을 지나가는 아들을 불러 그에게 시를 배우라 하고

예를 배우라 한 것은 간접적인 가르침을 내리고 있는 예다.

즉 자식을 뜰에서 가르친 것이 된다.

그래서 뜰에서 가르치는 것이 가정 교훈이란 성어로 쓰여진 것이다.
핵가족화 된 지금이라도 가정은 모든 행복의 원천이어야 한다.

가정이 안락하면 모든 일이 순조롭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에 시달리더라도 가정에서 새 힘을 얻고 용기를 얻게 된다.
그러나 가정이 항상 이상적일 수는 없다. 가족간에 불화가 있으면 가정은

더 이상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되어 버린다.
집이 싫어서 방황하다가 범죄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청소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부모의 무관심 때문에, 가정 불화 때문에, 경제적 곤란 때문에 빚어지는

이러한 비극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가정은 구성원 모두가 함께 가꾸어야 하며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이해할 때, 안락처가 되어 우리를 감싸줄 것이다.



- 철우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