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 법문

'지금 여기'를 산다는 것

마음정원(寂光) 2014. 7. 7. 06:38


'지금 여기'를 산다는 것


: 惺全 스님·남해 염불암 주지


생각이 빚어낸 '거짓 苦痛' 탓에 회한과 두려움에 짓눌려 사는 삶
이제 내딛는 한 걸음에만 집중해 히말라야를 넘었다는 老僧처럼
마음 비워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 달빛에도 마음의 彼岸 닿을 것을


惺全 스님·남해 염불암 주지
문을 열면 산이 목전이고 귀를 기울이면 새의 낭랑한 노랫소리가 들린다. 새벽에 일어나 법당을 향할 때면 박명(薄明)을 밟고 다가서는 먼 산과 하늘을 향해 먼저 합장(合掌)한다. 숲과 바람과 달빛이 은성(殷盛)한 곳에서 나는 새로운 친구들을 위해 새로운 소통의 언어에 주목한다. 그것은 경청과 주시다. 경청과 주시는 때로 적정(寂靜)한 산중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한다.

지난 음력 보름은 달이 매우 밝았다. 나는 잠들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난 쪽마루에 앉아 밤늦도록 달빛을 바라보았다. 달빛이 얼마나 은성하게 쏟아지던지, 그 빛을 따라 걸어가면 곧 달에 이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슴에 달빛처럼 고운 흥(興)이 일어났다. 손을 뻗어 달빛을 잡고만 싶었다. 허공을 향해 뻗은 내 손길은 마치 달빛을 향한 춤사위와도 같았다. 피식 웃음이 났다. 형상이 아닌 것을 잡으려 하다니. 술에 취해 달을 잡으려 물속으로 뛰어든 이태백(李太白) 가슴의 물결을 알 것만 같았다.

달빛에 취해 나는 달빛 흥취(興趣)를 노래했다. "달빛을 부으리. 심장에 부으리. 어둠은 빛이 되고, 고독은 찬란한 축복이 되리. 어둠 속에서는 몰랐던 너, 달빛 아래서는 나임을 알겠네. 삶이 힘들다고 말하지 말게. 보름이 되면 이렇게 가피(加被)처럼 심장에 달빛 가득 차는 것을. 그 어느 날 우리 배고프다 한탄하리오."

달빛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의 피안(彼岸)에 이를 것만 같았다. 마음의 피안이 이토록 가까이 보인 적이 있었던가. 피안은 달빛이 이르는 곳곳마다 꽃잎처럼 열리는 것만 같았다. 달빛 하나에도 만나게 되는 피안을 나는 얼마나 찾아 헤매었던가. 어리석음이었다. 순간순간을 살면 되는 것을 한평생을 산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기에 달빛 속에서 피안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평생을 사는 사람에게 삶은 바위처럼 무거운 것이 되지만 한평생을 한순간처럼 사는 사람에게 삶은 달빛처럼 아름다운 것이 되어 다가오는 것을 나는 보름의 달빛 아래서 알 것만 같았다. 순간 달빛은 아름다운 스승이었다.

티베트에 사는 노구(老軀)의 스님이 겨울날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놀라서 노(老)스님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 무서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왔느냐고. 스님은 덤덤하게 말했다. "그냥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왔지요." 놀라서 물어본 사람들에게 히말라야는 수만 걸음에도 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스님에게 히말라야는 한 걸음의 산일 뿐이었다. 그에게 한 걸음 한 걸음은 전부였으니까. 그는 산을 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함으로써 히말라야를 넘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침마다 산 정상에 오르면서 그 티베트의 노스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숨이 차고 멈추고 싶은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노스님의 한 걸음을 기억한다. 정상을 잊어버리고 한 걸음에 집중하자. 정상까지의 거리는 멀지만 한 걸음의 거리는 너무나 가깝지 않은가. 거리의 멂에 지쳤던 마음이 한 걸음의 짧은 거리에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는 순간 정상도 한 걸음의 거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하게 되면 사는 것이 한결 가벼워진다. 우리의 삶이 무거운 것은 우리의 삶이 지금 여기를 벗어나 과거나 미래에 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회한만 가득하고 미래를 생각하면 두려움만 가득한 것이 인생이다.

어느 날 저녁 한 남자 분을 만났다. 자기는 미래의 걱정이 너무 많아서 고통스럽다고 했다. 미래를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불안하다고 했다. 그는 지금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그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니까. 준비하는 것은 좋지만 걱정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 창조한 고통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통 중에는 실재하는 고통도 있지만 생각이 빚어낸 고통도 많다. 대다수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창조한 고통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미래에 대한 걱정, 나보다 잘난 사람에 대한 질투 등은 모두 생각이 창조한 고통이다. 이것들은 실재하는 고통이 아니다. 그것들은 거짓 고통일 뿐이다. 거짓 고통은 과거나 미래에 근거해 있다. 나는 그에게 실재하는 고통과 거짓 고통에 대해서 말해주고 거짓 고통은 버리라고 했다.

달빛은 그냥 마음을 비우고 보아야 감동으로 다가온다. 걱정을 잔뜩 안고 바라보면 달빛조차도 무거울 뿐이다. 달빛에 어디 무게가 있겠는가. 우리들의 걱정이 무게 없는 달빛에 무게를 더 얹을 뿐이다. 지금 여기를 온 마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달빛은 피안으로 다가온다. 달빛조차도 피안인 삶을 만나고 싶은가. 그러면 '지금 여기'를 살 일이다.


 

 



출처 : 조선일보 2014.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