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선조

하정(夏亭) 류관(柳寬)..

마음정원(寂光) 2011. 9. 17. 17:27

류관 선생 묘

 

소재 : 강하면 동오리

분류 : 경기도문화재

문의 : 031-770-2471

종목 : 시도기념물 62호

시대 : 조선 세종 15년(1433)

분류 : 묘

수량 : 1기

지정일 : 1981.07.16

관리자 : 유유영

 

 

 

 

류관(柳寬, 1346~1433)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자는 경부(敬夫), 호는 하정(夏亭),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고려 공민왕 20년(1371)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조선이 건국되자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 되었다. 태조 6년(1397) 대사성에 이어서 형조ㆍ이조의 전서(典書)를 지냈고, 강원도ㆍ전라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태종 1년(1401) 대사헌으로서 불교를 극력 배척하였고, 이어 간관을 탄핵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되기도 하였다. 이후 다시 등용되어 태종 10년에 예문관 대제학(藝文館 大提學)으로 『태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세종 6년(1424) 우의정으로 승진, 『고려사』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는 성품이 청렴검소하고 청빈하여 세종때 청백리에 녹선되기도 하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고, 저서로는 『하정집(夏亭集)』이 있다.

 

봉분은 부인과 쌍분으로 묘비 2기가 함께 있다. 구비(높이 143cm, 폭 44cm, 두께 23cm)는 묘의 왼쪽에 있는데 찬ㆍ서자는 비가 마모되어 알 수 없다. 묘 중앙에는 1998년에 세운 신비(총높이 195㎝, 폭 54㎝, 두께 24㎝)가 있다. 이 외 묘역 앞에는 상석, 망주석, 문인석, 장명등이 배치되어 있다. 묘는 화강석으로 하단을 1단 장방형으로 돌렸다.

 

마을입구에 세워진 신도비(전체높이 228cm, 폭 68cm, 두께 25cm)는 고종 28년(1891)에 건립된 것으로 신석우(申錫愚)가 비문을 짓고, 김홍집(金弘集)이 글씨를 썼다. 화강암재 이수에 비신은 대리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면 상단에 『崇祿大夫 議政府右議政』이라 음각되어 있다.

 


묘의 특징은 입수가 넓게 퍼졌다는 것이다. 입수가 퍼지면 불배합을 이루며 입수가 부실하면 혈을 결지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전순이 합해지면 이는 혈이 이루어진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묘역 앞의 안산이다. 류관 묘역 앞에는 작은 산이 하나 솟아올라 안산을 이루었다. 후손들이 이곳에 회양목을 심고 소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꾸몄다.
문제는 이 안산이 어느 기맥을 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 안산이 내청룡의 맥이 앞으로 뻗어나가 형성 되었다고 말한다. 내청룡은 묘역과 유사한 길이를 지니고 있고 산신 제단을 앞에 두고 있다. 만약 이 기맥을 타고 있다면 은맥의 형상으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특히 이 안산은 혈상을 이루고 있다.


다른 주장은 묘역에서 좌선이 발달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류관의 묘역은 힘이 있고, 좌선익이 발달하여 길게 뻗어 마치 개각처럼 자랐거나 혹은 기맥이 이곳으로 뻗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류관의 묘는 유혈이 아니라 겸혈이나 잉혈이 되었을 것이다.


어느 주장이 옳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기맥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기맥의 형상에 따라 혈형(穴形)도 달라지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혈의 경중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현재 류관의 묘역이 커 보이기는 하지만 안산으로 삼은 산 덩어리가 훨씬 큰 힘을 지닌 유려한 혈처임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가는 길>

강하면소재지에서 광주군 방향으로 88번 도로를 타고 1.5km정도 가면 왼편으로 동오리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2.5km정도 가면 동오 1리 간촌마을이 나온다. 간촌마을 오른쪽 사잇길로 400m 떨어진 야산에 유관의 묘가 위치한다.

 

< 출처 : 다음 까페 - 양평땅 잘 팔고 잘 사는 곳 / 양평사랑님 >

'역사속의 선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류관(세종조 우의정, 청백리) 영정  (0) 2011.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