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바로 스스로의 삶에서 주인으로
설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바로 날마다 참선하자는 것입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참선은 바로 번뇌의 도적을 지키는 일
참선은 선을 참구하는 것, 선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선을 닦는 것은 바로 마음을
오염되지 않게 하는 것이며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맑고 밝은 마음을 바르게 보는 것입니다.
그릇에 담긴 물이 흐릿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아야 그 그릇 안에 무엇이
있는지 잘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참선하는 사람은 먼저 몸과 입과 마음의
그릇을 온전하게 하고 그곳에 청정한 수행의
물을 담고 고요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마침내 지혜의 달빛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밥하기 전에 밥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고, 최소한 그릇없이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그릇을 비우고 와서 밥을
구걸하여 주는 자가 쉽게 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불자님, 고양이가 쥐를 어떻게 잡겠습니까?
쥐는 고양이를 보기만 해도 두려워
도망가지 못하고 사지가 흔들리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참선하여 마음을 집중한 사람은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번뇌의 도적이 두려워
꼼짝 못하지 않겠습니까?
번뇌의 도적을 자는 작업이 바로 참선입니다.
참선은 바로 번뇌의 도적을 지키는
문지기의 일과 비슷합니다.
옛날에 사람들은 사냥하기 위해
활을 쏠 때 먼저 호흡을 조절하고 자세를
고르게 하고 집중하여 활을 쏘았는데 그것이 또한
하나의 요가의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인도에서는 고요한 나무아래 바르게 앉아서
호흡을 조절하고 정신을 집중하여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자연적 현상은 점차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한 수행법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불교에서도
인도에서 전해온 수행법을 이어 받아서
선정하는 방법이 생겼다고 합니다.
요가의 원래 의미는 묶음, 결합인데,
요가에서는 올바르고 완전한 자세가 중요합니다.
완벽한 자세를 갖춘 신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도 완벽한 모습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가는 신과 결합 즉 신과 합일하는 것이
주요 목적입니다. 그와 달리 불교에서는 신을
영원한 존재로 보지 않고 윤회중생으로
보기 때문에 불교에서의 선, 선정, 참선은
고통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성취하는
수행법의 하나로 되었습니다.
참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책상 위에 책이나 연필, 동전 등 잡동사니가
땅에 흩어지면 다시 정리하기가 쉽지 않겠지요.
마찬가지로 마음이 흩어지면 다시 한 곳에
잘 정리하여 집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바로 참선이 이러한 흩어진 마음을 바로
정리하는 작업입니다. 주워서 정리할 때에도 가까운
것이나 소중한 것을 먼저 주워서 정리하듯이
마음이 흩어져 있을 때 가능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얽혀있는 실타래를 다시 풀기 위해서는
먼저 한 실타래만 가지고 시작해서 풀어야 합니다.
한꺼번에 실타래를 잡아당기면 도리어 얽히게
되듯이 마음을 정리하는 곳도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참선은 얽힌 마음의 실타래를
순차적으로 푸는 작업입니다.
바퀴벌레는 어두운 곳에서 나타나 먹을 것을
챙겨먹고 다시 숨을 뿐만 아니라, 번식력도
강하고 심지어 핵폭탄이 떨어져도 살아날 수
있는 생물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참선에 들어 잘 관찰해보면,
망상과 같은 바퀴벌레가 우리의 육근(六根)을
통해 흘러나옵니다. 자신이 바르게 지켜보고
있으면 숨지만 그렇지 못하고 어둠에서처럼
마음이 흐릿하면 망상이라는 바퀴벌레는
마음의 방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이리 저리 들어가고 나오게 됩니다.
불자님, 어둠에 물들면 지체하지 않고
망상이라는 바퀴벌레가 나타납니다.
그 망상의 바퀴벌레를 참선을 통해 지켜보고
박멸하십시오. 자신을 바르게 하고,
육근에 불을 밝히고, 마음이 흐릿하지 않고
고요히 해야만 이 재빠르고 마음을 망치는 번식력이
강력한 망상의 바퀴벌레를 잡을 수 있습니다.
바닷가를 가면 갈매기를 지켜보고 물고기를
지켜보십시오. 그들은 그들의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갈매기의 길과 물고기의 길을 모르지만
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길로 가지만 물고기들이 자신의
길로 원하는 곳까지 갈 수 있습니다.
중생에게 보이지 않는 깨달음의 길은
바로 참선하는 사람이 볼 수 있습니다.
참선의 길을 따라가면 고통이 없고 깨달음의
보배가 가득한 그러한 곳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깨달음의 보배를 만끽하며 보고
싶어하는 중생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지혜와
자비심을 얻게 됩니다. 오욕락에 물들고 인간이
지녀야 할 선을 넘어서서 자타의 중생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참선한다는 것은,
여권없이 한 나라에 들어가 살지만 나중에는
경찰에게 잡혀 다시 그 나라에서 추방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참선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몸과 입과 마음을 선하게 하고 계를
잘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참선의 여권이겠지요.
이 여권을 가지고 가면 참선 수행문을
들어갈 수 있으며 그곳에서 원하는 것을
보고,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그 여권을 가지고 참선 수행문으로 들어가 봅시다.
좌선하는 법의 다섯가지 문이란?
내가 부처이고 여래라는 확신이 있는 사람은
흙에 덮인 금을 들어내고 금광석을 찾아
마침내 제려하여 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중생에게는 금광석을 보여주면
금광석을 돌로 보고 보배인지를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금을 원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금반지를 원하는 사람,
어떤 사람은 금 대신에 돈을 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참선에도 여러 가지 중생이
원하는 바에 따라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좌선(坐禪)하는 법에 다섯 문(門)이 있으니
첫째는 안반(安般)이요 둘째는 부정(不淨)이며,
셋째는 자심(慈心)이요, 넷째는 관연(觀緣)이며,
다섯째는 염불(念佛)이다.
안반, 부정, 관연 등 이 세 문에는 안팎의
경계가 있고 염불과 자심은 바깥 경계를 반연한다.
그러므로 이 다섯문은 중생들의 병을 따르는 것이다.
즉, 어지러운 마음이 많은 이에게는 안반으로 가르치며
탐애(貪愛)가 많은 이는 부정으로 가르치며
분노가 많은 이에게는 자심으로 가르치고
자기의 집착이 많은 이에게는 관연으로 가르치며
마음이 흐릿한 이에게는 염불로 가르친다.
『정법염처경』「오문선경요용법」233쪽.
여기서 안반은 들숨과 날숨 호흡을 관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들이쉴 때 내쉴 때 모습을
수를 헤아리거나 모습을 관찰하는 방법입니다.
길게 내쉬는지, 짧게 내쉬는지를 바르게 알고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바르게 관찰하면 어지러운
마음이 고요해지고 마음의 집중을 가져옵니다.
좋아하는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는 나라는 존재가
영원하지 않고, 청정하지 않고 부서져 무너지는
존재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 묘지 등에서
부정관을 닦도록 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맞지 않는 것을 모두 배척하고 자신의 화를
남에게 내뱉는 사람에게는 자비관을
수행하게 하여 중생은 모두 나의 부모이고
형제이고 나와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자각하도록 합니다.
또한 자신이 모든 것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자기에 집착하는 사람은 중생들이
서로 인연하여 이루어졌으며 어디에도
중심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하고
나의 모든 것은 결국 중생과 인연되어 생긴
것이고 중생없이는 나라는 존재는 없다는 것을
알게하여 자신에만 집착하는 것을 단절하게 합니다.
끝으로 마음이 흐리고 마음에 확신이 없고
믿음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부처님을 만나게
하기 위해 부처님의 가피력을 알게 하기
위해서 염불을 하도록 합니다.
염불을 하면 부처님을 만나게 됩니다.
부처님을 만나면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불자님, 호흡을 관찰하십시오.
몸은 무너지고 영원한 것이 아님을 생각하십시오.
자비심을 내십시오. 인연을 이해하십시오.
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십시오.
이렇게 매일 자신이 병든 상태를 알고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살아간다면 바로
그것이 참선하는 방법에 맞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와 세상은 항상하지 않고 변화하며,
절대적인 주인이 없으며 고통스러운 존재입니다.
쓰레기를 버리듯 나와 세계가 항상하고
절대적 주인이 있고 영원하고 즐거운 존재라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버리고 다시 마음으로 가져오지 마십시오.
불자님의 마음이 악취를 풍기게 하지 마십시오.
자 불자님, 빨리 그것을 버리고
자신에 맞는 참선법을 찾아보십시오.
먼저 몸의 자세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의
선함과 청정함 그리고 자신의 상태를 잘 이해하십시오.
거기에 스스로 참선하는 방법이 들어있습니다.
숨쉬는 법만 가르쳤는데 벌써 가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 알았다고 자만하지 말고 인내하며
훌륭한 참선법을 배워보십시오.
공안이나 화두를 가르쳐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공안이나 화두를 담아갈 그릇을 가져왔는지
물었을 때 잘 대답할 수 있도록 훌륭한
참선자의 모델을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그릇을 준비하십시오.
자신의 병을 모르면 의사에게 찾아가
진찰하듯이 참선법을 모르면 훌륭한 참선자에게
찾아가 참선법을 물어보십시오.
묻는 자는 그 방법을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생활 속에서 참선하자
걸을 때는 내가 걷고 있다고 알고,
앉을 때는 내가 앉아 있다고 알고,
내가 서 있을 때는 내가 서 있다고 알고,
내가 누워 있을 때는 내가 누워있다고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행동법을 바르게 아는 것이 바로 참선입니다.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동적이거나 정적일 때에도
자신의 행동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불자님, 지금 마음이 어떻습니까?
괴로우면 괴롭다고 알고, 즐거우면 즐겁다고 알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고 알고,
탐심이 있으면 탐심이 있다고 알고,
성냄이 있으면 성냄이 있다고 알고,
어리석음이 있으면 어리석음이 있다고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참선의 시작은 바로 자신의 모습과
자신의 느낌, 자신의 마음상태 그리고
주위환경을 바르게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병자가 병이 들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느끼고 주위에 사람에게
말할 수 있고 진찰받고 병이 낫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같은 마음이 바로
참선하는 마음입니다.
자신을 아는 사람은 바로 아이와 다른
가족원의 상태, 느낌, 마음, 주위환경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주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 가를 아는 사람은 타인의
주인공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바닷물이 짠 맛을 아는 사람이 바로 참선할 수
있는 사람이고 참선에 바르게 들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배고플 때 배고픔을 아는
사람은 바로 바르게 보고 참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참선에 들어가는 출입증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출입증을 참선의
문을 지키는 자가 잘 볼 수 있도록 가슴에
붙이고 들어가십시오. 사실대로 알려고 하고
마음이 선한 사람은 참선의 문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참선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지금 배추 값이 얼마입니까?
지금의 배추 값을 아는 사람이 바로
참선할 수 있습니다.
불자님, 배추 값이 변화하듯이 마음도 변합니다.
변화된 배추 값을 알아내듯 변화된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맑고 밝은 마음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과연 그 마음에 갖가지
미세한 번뇌물질이 끼어 있지 않는지
찾아보십시오. 바르게 보고 마음이 물들어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바로 그것을 닦아내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참선의 과정입니다.
먼지가 많은 불자는 오랫동안 닦아내야 하고
먼지가 적은 불자는 조금만 닦아내도
마음의 거울이 맑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참선을 할 때에는 참선하기 좋은 곳에서
마음을 집중하고 계속해서 정진해야 합니다.
갈증나는 사람이 물을 구하듯,
굶주린 사람이 먹을 것을 구하듯이
한 마음으로 하나에 집중해야 합니다.
아이가 기어가다가 걸음마를 내딛고 다시
마음대로 걷고 심지어 달려가게 되듯이
참선에 들면 욕심을 버리고 차근차근
수행을 해 나가야 합니다. 익혔던 참선을
잘 유지하고 지혜를 차곡차곡 채워야 합니다.
선의 조짐이 잘 나타나면…
어떻게 잘 보호하느냐 하면,
첫째 처소에서 잘 머무르며,
둘째 처소에서 잘 행하며,
셋째 착한 사람을 몸소 가까이 하며,
넷째 음식을 알맞게 하며,
다섯째 네 철에 조화되며,
여섯째 거닐고 서고 앉고 눕고,
일곱째 시끄러움과 그 밖의 먹는 것
여윔을 처음으로 하나니….
『선견율비바사』제11권 318-319쪽.
이러한 참선의 조짐을 잘 보호하고
단기간에 모든 것을 이루려는 마음을 내지 마십시오.
현생에 하지 못하면 다음 세상에는 얻을 수도
있겠지 하고 생각하십시오.
현생에서 많이 이해하지 못하고 닦지 못한 것도
다음 생에는 도움을 주겠지 하고 생각하십시오.
마음의 서두름은 참선할 때 병을 얻게 됩니다.
참선하여 병을 얻고자 함이 목적이 아니라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 하십시오.
삶도 마찬가지로 그와 같습니다.
참선하는 것은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실생활의 승리자가 되는 길이 바로
참선에서 진정한 승자가 되는 길입니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 열심히 실생활에 전념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참선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참선에 든 것이라고 합니다.
참선에서 부처님 마음과 합일되면
그것이 바로 참선의 목적에 이른 것입니다.
부처님과 하나가 되어 중생세계에
나아가 중생을 돌보는 지혜와 자비를 얻는
단계가 바로 참선의 절정입니다.
깊은 명상으로 지혜와 자비를 얻은 사람은
중생에게 평등한 마음을 일으키고
중생과 벗하는 데에 게으르지 않습니다.
자신을 내세워 남을 괴롭히지도 않고 자신의
몸과 입과 마음으로 남을 괴롭히지 않고
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헌신합니다.
삶 속에서도 그러한 아름답고 행복한 삶이 있습니다.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을 반가워하고 만나고
싶어하듯이 참선하는 사람은 지혜와 자비를 갖춘
참선자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그러한 참선자를 찾아가십시오.
이 세상에 그러한 참선자를 많이 길러내기
위해서 참선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가까이 모십시오. 참선하는 자를 가까이에서
공경하고 모시는 사람은 모든 불보살이
보살펴주실 것입니다.
진정한 보배를 얻기 위해서 오늘도
참선하는 장소를 만들고 참선하는 수행자를
찬탄하고 참선하는 경전을 몸에 지니고
참선하는 사람에게 공덕을 베푸십시오.
그 공덕이 자라면 진정으로 부처님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러한 부처님이
탄생할 수 있도록 발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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