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정말 2009년이 끝나 갑니다.
피겨 팬이라면 그 어느 때 보다도 행복함을 많이 느꼈던 한 해지요. 그래서 오늘부터 3일간은 2009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그 첫 번째로 김연아 선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지요.
하지만 오늘 제가 드릴 이야기는 5대회 연속 우승이나 5개의 세계 신기록 달성 같은 것이 아니라 지난 4월에 어디선가 보고 스크랩해 둔 사진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 어디서 스크랩했는지 잊어 버렸습니다만 Festa on Ice에서 새 갈라 Don't stop the Music을 연기하는 김연아 선수의 모습이죠. 그런데 저로 하여금 이 사진을 스크랩하게 한 것은 김연아 선수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바로 저 등 근육 때문이었습니다.
찾아 보니 더 오랜 사진에도 이렇게 등 근육이 크게 강조된 사진도 있군요.
우리는 김연아 선수를 보며 그 아름다운 자태와 연기, 점프, 음악성 뿐 아니라 상당한 노래 실력까지 여러 가지에 감탄합니다. 하지만, 위 두 사진은 제 가슴을 크게 울렸습니다.
저거구나..저것이 김연아를 세계 챔피언으로 세계 피겨 여왕으로 만들었구나....
도대체 얼마나 오래 그렇게 열심히 운동했기에 연예인들조차 부러워 할 몸매를 가진 김연아 선수의 등에 저 훈련의 역사가 이렇게나 깊게 패여 있는 것일까?
2002 월드컵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한국 축구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박지성 선수의 발 사진이 몇년 전 인터넷을 달군 적이 있었지요. 또 세계적 발레리나 강수진 님의 그 많은 훈련에서 비롯된 기형적인 발 사진이 심금을 울린 적이 있었지요. 김연아 선수의 등 근육 사진 역시 그렇습니다.
저를 포함한 팬들은 참 이기적이어서 김연아 선수가 언제나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상대 선수들을 압도하고 전세계의 피겨 전문가들로부터 찬사를 토하게 하고 그러고도 그냥 자연스럽게 살짝 웃으며 겸손한 모습을 보이기만을 원합니다. 어쩌다 실수라도 하면 일부 배려가 부족한 사람들은 이때다 싶어 알량한 지식을 내보이며 코치 노릇을 하기도 하고, 일부 언론은 무책임한 기사를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스포츠는 사회 어느 영역보다 정직합니다.
김연아 선수의 아름다운 연기는 저 등근육을 쌓기까지의 무한한 노력의 결정체입니다. 오죽하면 오서 코치가 김연아의 유일한 단점이 연습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라고 했을까요?
제 나이가 오십이 넘었고 그간 직업이 책상에 앉아 논문을 보는 것이라 제 어깨는 예전부터 좀 굽어 있었습니다. 2년 전부터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그 동안은 그냥 알아서 유산소 운동 정도만 하던 것을 트레이닝 코치를 두어 헬스를 했는데 무엇보다 그 코치가 제게 강조한 것이 저 등 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너무나 굳어 있는 제 어깨에 할 말을 잊고 몇 가지 등 운동을 반복적으로 시켰습니다. 뭐 나이 탓도 있겠지만 그렇게 2년을 해도 등 근육이라는 게 쉽게 저렇게 눈에 보일 만큼 생기는 것이 아니더군요...
김연아 선수는 천재가 아닙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피겨에 꼭 맞는 체형을 '타고 났고' 음악성은 '천부적이며' 운동 신경도 '천재적' 이라고 하는 거지요. 실은 12년 간의 피겨 사랑 속에 절제된 생활 태도와 꾸준한 운동량, 그리고 피겨에 필요한 소양에 대한 끊임 없는 노력의 역사가 저 등 근육처럼 김연아 선수에게 기록되어 있는 겁니다. 오직 천재적인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피겨에 대한 사랑 뿐일 겁니다.
승냥이들이 가장 좋아하고 또 가장 울컥해 하며 보는 새드노바 님의 팬 아트 작품이죠.
100년을 헤아리는 피겨 무관심의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의 한 소녀가 그 보수적이고 문화 강대국들만이 판치던 세계 피겨 지도에 대한민국을 그 숱한 노력으로 아로새기는 동안 무던히도 많은 사람들이 몰이해했고 때로는 기를 꺾을만한 여러 일들을 만들기도 했는데 하나 둘 늘어난 승냥이들만이 김연아 선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그 곁을 지키며 같이 괴로와하고 같이 웃어 왔습니다. 하지만 팬은 팬일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김연아 선수가 저처럼 외로와할 때 그냥 그 곁에 있어 주며 '미안해 연아야' 할 수 밖에 없음에 더더욱 분노하던 나날이 있었지요.
2009년 그러나 김연아 선수는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렇게도 원하던 월드 챔피언, 때로는 부상 때문에,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판정 때문에 손에 다 쥐었다 싶을 때 날아갔던 그 타이틀을 세계 최초의 200점 돌파라는 신기록과 함께 거머 쥐고 새삼 태극기의 무게를 시상대 맨 위에서 느끼면서 흐르는 눈물과 함께 그간의 모든 아픔을 주었던 것들을 용서하며 우리 앞에 위 사진처럼 환한 뮤즈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도 행복했습니다. 더불어 우리 사회 곳곳이 조금씩이나마 피겨를 보는 눈도 달라져 갔고, 김연아 선수에 대한 시선도 변화했으며 많은 어린이들이 새로운 꿈을 가졌습니다.
수없이 되뇌었을 연아야 미안해 대신 2009년을 불과 50여 시간 남긴 지금 저는 연아야 고마워 라고 말하렵니다.
2009년 한 해 동안 많은 사람들의 행복의 근원이 되었던 김연아 선수에게 다음 한 해의 인사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습니다. 흔한 Happy New Year 보다 올림픽 해니까 Happy Gold Year라고 할까 하다가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 이렇게 말하렵니다.
Happy Happy Year 연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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