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향기

안색이 맑고 미소가 밝은 수행자들 - 지리산 스님들의 못 말리는수행이야기

마음정원(寂光) 2009. 6. 20. 12:44

 

안색이 맑고 미소가 밝은 수행자들
- 천진 쓰고 현현 엮은 <지리산 스님들의 못 말리는 수행이야기>

 

손발톱을 

깎을 때처럼 집중해서 ‘나’를 챙기는 경우도 드물다.
마음을 모아서 ‘나’의 손톱과 발톱을 보기 좋게 다듬어야 하고
행여라도 손발톱 밑에 있는 ‘나’의 살을 다치게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손발톱을 깎을 때 ‘나’ 말고 남을 챙기는 마음을 내는 이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잘게 손발톱을 자르고
모아둔 손발톱을 개미들이 물어가기 좋은 곳에 놓아두는 사람들,
그들은 지리산 맥전마을에 터를 잡고 보살행을 펴고 있는 수행자들이다.
 
드라마 타이틀 같은 책 제목이 맘에 들지 않았으면서도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책을 펼쳤다.
들어가는 말과 목차를 넘기자마자 만나게 되는 몇 장의 사진,
사진 속 사람들은 지어낸 것 같지 않게 웃거나 서있거나 앉아있었다.
감출 것도 드러낼 것도 없어 보이는 몸짓이었는데도
풀을 먹이지도 다리지도 않아 처지고 늘어진 옷차림이었는데도
사진을 보는 느낌은 백 마디 말을 듣는 것보다 확실했고 천 줄의 글을 읽는 것보다 분명했다.
 
빗물이 새는 토굴에서 수행하고
버려진 자재로 만든 한 평짜리 작은 공간에 몸을 뉘어도
큰 뜻을 홍서원(弘誓院)에 담고
법 따라 인법당(因法堂)에서 도를 닦는 수행자들은
시계 없이 새벽에 일어나 예불을 드리고
벌레, 모기, 파리, 개미, 지네 한 마리의 생명조차 귀히 여기고
볕 있는 낮에는 결코 잠들지 않으며
부처님의 바른 법과 중생을 향한 대원력을 마음에 담아둘 뿐
세속의 그 어떤 것에도 마음 내지 않는 것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

선지식들은 깨달은 사람을 기특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들이 존재계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바로 보리심을 일으켜 보살행을 하는 이들이다.”

생각해 보라. 깨달음을 얻는 이유는 자신과 타인을 가장 이롭게 하기 위함인데,

연기의 법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깨달음을 이루려고 하는 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먹고 싶은 대로 먹어가면서 깨달음을 얻으려고 한다면

깨달음에 대한 자격이 주어지겠는가?

 

-

「깨달음으로 가는 반야, 지옥으로 가는 반야」중에서, 212쪽
 
몸은 세속에 있었으나 출가자와 다름없이 산 재가수행자와
세속적 출세라는 배에 끝내 동승하기 싫어서 길을 찾아 나선 이와
어려서부터 법의 향기 속에 살다가 그 스스로 향기로운 삶을 살고 싶었던 이가
세상에 나온 인연은 제각기 달랐으나 한자리에 모였고
한 사람은 스승으로 두 사람은 스승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
 
쥐와 들고양이를 가리지 않고 함께 공양하고
벌레들이 갉아먹을 채소를 따로 심어 키우고
지네와 한 이불 속에서 잠자는 것을 불안해하지 않고
모기들이 배를 채우고 가도 좋다고 몸을 내주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죄짓지 말라는 세상 가르침을 따라 살려 했던 것이 참 허망하고 무색하다 싶었다.
 
외롭고 고달파 보이는 하루하루가 정작 본인들은 행복하단다.
독버섯을 먹고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나서도 배우고 깨달은 것 있어서 행복하고
지와 행이 여일한 스승에게서 배울 수 있어서 행복하고
닮은 것 하나 없으나 어긋나지 않는 도반과 함께 해서 행복하고
바른 길 가는 것을 축원으로 힘 보태는 이들 있어 행복하니
웃을 때도 눈물이 흐를 때도 행복하지 않을 때가 없다는 그들이다.
 
지혜를 노래하듯 불러도 밝은 빛 안에 들지 못하고
자비와 복덕을 입에 달고 살아도 내 하루가 행복하지 않았던 이유,
지혜와 자비와 복덕의 한복판에 언제나 ‘나’를 앉혀둬서 그랬다는 것을
지리산 화개골 맥전마을에 사는 수행자들의 일상을 읽어가는 동안 알 수 있었다.
 
나’를 얽어 매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라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
대자유는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고 치러야 할 것을 치르고 나서야 얻을 수 있다.
그러니 어찌 떠나는 것이 담 크게 벌이는 일 아니겠으며
버리는 것이 비할 바 없는 용기 아니겠으며
베풀고 보듬겠다 낸 마음이 크나큰 서원 아니겠는가.
 
불사를 일으키려 하지 말고
닭의 벼슬 같은 자리에 마음 두지 말고
깨달음이 끝인 것처럼 매여 살지 말고
하늘에 날 것을 바라지 말라.
조사스님들의 말씀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아침이다.
 
   
제목: 지리산 스님들의 못 말리는 수행이야기
저자: 천진
엮은이: 현현
출판: 불광출판사
가격: 인터넷 판매가 10,800원